썬나도민 인터뷰
한 땀 한 땀 수놓는 자기만의 세계 | 이지은 님
2021. 3. 18 | mango
 


한 땀 한 땀 수놓는 자기만의 세계

썬나도민 이지은 인터뷰

 

희뿌연 안개 속에서 나를 유일하고 분명하게 만드는 것. 그게 물건이든, 움직임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자신을 붙잡아주는 것이 있다면 진창에 빠진대도 추스르고 나아갈 수 있다. ‘유일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은 매트 위에서도, 글자가 빼곡한 종이 위에서도, 깊고 잔잔한 대화의 흐름 안에서도 펼쳐진다. 

내면을 탐색하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으로 요가에 이끌린 이지은 님은 <요가로 나를 만나고, 문장에 나를 담습니다>라는 수업으로 처음 썬데이나마스떼를 만났다. 올해 초 핸드포크 타투를 배운 그는 본격적인 타투이스트 활동을 앞두고 있다. 오늘도 마음의 발자국을 좇아 저벅저벅 걷는 지은 님과 이야기 나누었다.


Q. 지은님, 반갑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 사는 스물 여섯 살 이지은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어떤 일을 해야 될지 고민이 컸어요. 게다가 코로나19도 겹쳐서 붕 뜬 시간을 보냈는데요. 관심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면서, 타투 작업을 시작하려는 와중이에요. 요즘에는 균형을 잡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Q. 무엇과 무엇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나요?

나 자신과 삶 사이의 균형이요. ‘삶과 친해지기’라고 할까요. 지금까지는 학교에 다녔으니까 그 스케줄에 맞춰 살았는데요. 이제 학교라는 정해진 루틴이 없어지니 삶을 온전히 제 방식대로 꾸려가야 하잖아요. 갑자기 그런 상황에 놓이니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Q. 그러다 타투를 만나셨다고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에게도 정말 뜬금없는 일이긴 해요. 보통은 미술을 전공한 분들이 타투를 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저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어요. 부모님이 혀를 차시더라고요.

학교를 수료했는데, 좀 무서웠나 봐요.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융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막연하게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혼자만의 소용돌이가 절정에 달했던 어느 새벽에 갑자기 타투를 받고 싶어진 거예요. 마치 귀 뚫는 것처럼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아서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타투이스트 분께 갑자기 연락을 드려 타투를 받게 됐는데, 그때 나눈 대화가 너무 좋아서 며칠 내내 곱씹었어요. 그분이 저에게 주신 용기와 힘이 그간의 시간을 나아지게 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어요. 저도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초에 타투를 배우게 됐어요. 지금은 배우는 과정이 끝났고, 합정 쪽에 작업실을 오픈할 계획이에요.

 

Q. 그중에서도 핸드포크를 하신다고요. 핸드포크 타투는 뭐예요?

핸드포크는 바늘에 잉크를 묻혀서 직접 살을 콕콕콕 찌르는 거예요. 진피층으로 들어가며 잉크를 넣는 거죠. 마치 점 찍듯이 하는 점묘화 같은 거예요. 그걸 머신은 아주 빠르게 하는 거고, 핸드포크 타투는 손으로 전부 하나하나 찍는 작업이에요.

현실적으로 머신보다 배우는 비용이 저렴하기도 하고, 머신은 기계를 다루는 숙련도가 필요하니 배우는 기간이 더 길어져요. 개인 장비를 마련해야 하고요. 그런 점에서 머신은 좀 부담이 있었어요. 아직은 머신을 배워볼 생각이 없어요. 핸드포크가 매력적이에요. 한 땀 한 땀 놓아주는 느낌. 제가 아날로그를 좋아해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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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하는 타투이스트를 만나다 [요기조기 : 이지은 편]


Q. 요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매주 새로 들어오는 책들을 정리하던 중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라는 책을 봤어요. 표지 보고 재밌겠다 싶어서 읽어봤는데, 문장마다 좋은 거예요. 저와 결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저자가 요가를 시작하며 쓴 에세이집인데, 평온함을 주는 말이 많아서 관심이 생겼어요.

Q. 썬나에서는 글쓰기 요가 수업을 들으셨다면서요.

글쓰기와 요가 둘 다 흥미롭고 관심이 가서 수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말 궁금했어요. 또 이 수업을 들으면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글쓰기와 요가는 상반되거든요. 요가 할 때는 생각을 비우고 내 몸에 집중해야 하는데, 글쓰기는 생각하고 고치고 퇴고하는 과정이니까.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요가랑 글쓰기도 맞물리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Q. 요가와 글쓰기가 맞물리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수업 내용에 ‘유일어 찾기’가 있었어요. 나만의 유일어를 찾는 시간. 그러고 보면 모양이 같은 자세라도 힘 들어가는 부분, 숨 쉬는 방식, 하는 생각도 다 다르잖아요. 각자가 유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글쓰기가 나만의 유일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요가도 나만의 유일한 동작을 찾아가는 과정이구나. 둘 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Q. 이메일 뉴스레터 <지믄레터>도 운영하신다고요.

글쓰기를 워낙 좋아해요. 자연스럽게 저의 일부가 된 분야거든요. 일기도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쓰고 있는데, 재작년 말에 그동안 써온 일기장을 읽어보니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지금 보면 되게 귀엽지만, 막상 그때는 심각했던 고민도 많고요. 나이대마다 거치는 특유의 양상이 있잖아요. 지금 제 나이대에는 취업이나 살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고요.

이걸 나만 보지 말고 주위 친구들한테 나눠보자고 생각했어요. 인스타그램으로 “내 글 볼 사람!”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점점 구독자가 늘어나 <지믄레터>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하게 됐어요. 시즌 1이 시작된 게 작년 2월 1일이었고, 어느덧 1년이 지났네요. 곧 시작될 시즌 3에서는 새로운 시도나 변화를 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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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졸업 후 여러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요즘엔 굳이 한 가지 직업을 구하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또 잘하면서 재밌어하는 것을 두루 수입원으로 만드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딱 하나의 일만 하는 것보다는 제가 관심 있고 잘하는 분야에서도 경제적 수익을 낼 방법을 고민하게 돼요.

그런 점에서 <지믄레터>도 시즌 3부터는 요즘 많이 하는 구독모델을 한번 도입해볼까 해요. 좋아서 시작한 거고, 처음엔 내 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까 그거면 만족했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삶에서 끌고 가려면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금전적인 문제잖아요. 그 부분이 급박하다고 느끼진 않아야 좋아하는 것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Q.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일반적인 인식일 텐데, 주변에서 그러한 압박은 없나요?

타투를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수강료 중 20만 원 정도를 선입금해야 했어요. 근데 그것만 하면 의지가 약해질 것 같아서 전체 금액을 일시불로 넣었거든요. 그 순간부터 갑자기 무서운 거예요. 제가 한 선택인데도. 친구들과 함께 걷던 길에서 갑자기 이탈한 느낌이랄까요? 나 혼자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 그게 좀 무서웠었어요.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평범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세요. 평범한 직업을 갖고 월화수목금 일 다니다가 결혼하고 애 낳아서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삶이 아니면 평범하게 보지 않는 사회적 시선도 의식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신경 쓰시고요.

하지만 제가 사는 방식도 평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저 아직 한국에서 다양성이 이해받지 못해서 그럴 뿐인 것 같아요.

 

Q. 지은님이 생각하는 ‘건강한 삶’이 궁금해요.

채우고 비우는 게 원활한 상태가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일상 속에서 저도 모르게 쌓이는 게 있잖아요. 책상에는 영수증이나 노트 같은 게 쌓이고, 컴퓨터 바탕화면에도 그림이나 지원서 파일이 쌓이고요. 물론 그때그때 정리하면 좋은데, 항상 치우고 살 순 없으니까. 어느 순간 청소해야 하는 때가 와요. 그렇게 비우는 채우는 과정이 잘 순환되어야 건강한 것 같더라고요.

요즘엔 비우기를 잘 못 했어요. 지금이 비워야 할 때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나 봐요. 그래서 작년 말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Q. 감정을 비우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글쓰기. 일기를 쓰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날 있었던 일뿐 아니라 나도 모르던 생각이 나와요. 실타래처럼. 그걸 풀고 풀어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저 멀리까지 갔다가 다시 오늘의 일로 돌아와요. 그러다 보면 며칠 전 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되죠. 글쓰기의 힘이란.

 

Q. 썬나도민들에게 인사 한 마디 남겨주세요.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는데, 같이 열심히 추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중 하나의 방법으로 썬데이나마스떼에 놀러 오시면 되고요. 제 타투샵도 많이 놀러 오세요!

썬나도민 이지은의 인스타그램 채널

타투 계정: @heart_pokes2
개인 계정: @neumni_ss

에디터 & 인터뷰어: 망고🥭
사진: 김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