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로 나를 만나고, 문장에 나를 담다
[ 요가로 나를 만나고, 문장에 나를 담다 ] (2)~(4)
2021. 1. 17 | 배혜진
 

안녕하세요. 배혜진입니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요가와 글쓰기' 수업 첫 시즌이 끝나갑니다. 2020년 11월 22일, 1주차에는 '다라나(Dharana)'를 주제로 수련 후 매트 위에서 느낀 점을 자유롭게 쓰면서 요가와 글쓰기의 공통 분모를 마련했습니다. 2주차에는 이태준 선생님의 <문장 강화>에 등장한 '유일어'의 개념을 활용해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만의 감상과 표현에 대해 이야기했죠. 2021년 1월 10일, 3주차에는 '신장과 방광' 메르디앙을 중심으로 수련했는데요. 신장과 방광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의 본질이 되는 기관으로 이곳이 허할 경우 감정적으로는 두려움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가령 '오금이 저리다', '등골이 스산하다' 같은 표현은 신장-방광 메르디앙과 연관됐다고 소개했지요. 이어서 글쓰기 파트에서는 신형철 선생님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프롤로그 부분을 발췌해 좋은 문장을 구성하는 법을 고민했습니다. 아래 2~4주차 수업 글쓰기 파트에 활용된 부분을 정리해 첨부합니다. 

 

# 유일어

- 나의 글쓰기 성향은 다작을 일삼았던 발자크 유형인지 / 살면서 오직 7편의 작품만 쓴 플로베르 유형인지?

- 유일어를 찾을 것 :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 밖에는 없다" 한 플로베르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거니와 그에게서 배운 모빠상도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는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 그러니가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 된다." 하였다. 명사든 동사든 형용사든, 오직 한 가지 말, 유일한 말, 다시 없는 말, 그 말은 그 뜻에 가장 적합한 말을 가리킴이다. 

- 말을 많이 알아야 할 것 (사전 활용) : 유일어란 그 중 골라진 말, 최후로 선택된 말임에 틀림없다.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하나를 택하기만 했다고 유일어의 가치가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말을 있는 대로 전부 모아놓고 그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데만 유일어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 스스로 발견해 만들어 쓸 것 (시적 허용)

- 다른 유의어로 대체했을 때 큰 의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유일어라고 볼 수 없다.

 

# 문장 쓰기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p.5 - 6

- "건축학을 잘 모르면서도 글 짓기는 집 짓기와 유사한 것이라 믿고 있다. 지면(紙面)이 곧 지면(面)이어서, 나는 거기에 글을 짓는다. 건축을 위한 공정 혹은 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있을 만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건물이 지어져야 한다. 한 편의 글에 그런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은 (취향이나 입장이 아니라) 인식이다.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듯이, 문장은 쓰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특정한 인식을 가감 없이 실어 나르는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는 플로베르적인 가정을 나는 믿는다. 그런 문장은 한번 쓰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다.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필요한 단락의 개수를 계산하고 각 단락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배분한다. 가급적 각 단락의 길이를 똑같이 맞추고 이를 쌓아 올린다. 이 시각적 균형은 사유의 구조적 균형을 반영한다(반영해야 한다). 이제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 한 단락도 더하거나 빼면 이 건축물은 무너진다(무너져야 한다)."

 

# 퇴고

-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삶은 크게 달랐는데, 도스또옙스키는 톨스토이의 단 한 가지가 부럽다고 이야기했단다. 그것은 퇴고할 시간적 여유가 많다는 것이었다.

-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면 퇴고의 중요성은 언제나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에 관해선 이태준 선생의 <문장 강화>에 정리된 '퇴고의 기준' 부분을 요약해 공유한다.

- 어떻게 고칠 것인가?

1) 먼저 든든히 지키고 갈 것은 마음이다. 표현하려는 마음이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정경이든, 무슨 생각이든, 먼저 내 마음속에 들어왔으니까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문장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결코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라면, 그 마음만 나타내보아라. 글을 고친다고 해서 으레 화려하게, 유창하게, 자꾸만 다듬는 것으로 아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2) 용어 쓰임이 올바른지 확인할 것.

3) 모순인 곳과 오해될 데가 없는지 보자.

3) 인상이 선명한지, 어지럽게 하는 데가 없는지 보자.

4) 될 수 있는 대로 줄이자 :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5) 처음의 것이 있나? : 퇴고는 결국 '처음의 글'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함이다. 퇴고를 한 후 '처음의 생각'과 '처음의 신선함'이 유지돼야 한다. 

6) 이 표현에 만족할 수 있나? 없나? : "나중에는 문장이 문제가 아니다. 문장에선 앞의 다섯 가지 조건을 다 만족했더라도 '내가 표현하려는 것이 이것인가?', '이것으로 내 자신이 만족한가? 한번 따지고 내놓는 것이라야 한 줄의 글이라도 비로소 '자기의 표현'이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배혜진
2021-01-17
무사히 시즌을 마쳤네요 :) 우리 남은 인사는 이곳에서 마무리해요! 부족함도 많았지만 정확히 반성하고, 다음주에 찾아뵐 마지막 시즌은 훨씬 더 보완해 이어가도록 할게요. 요가와 글쓰기라는 공통분모로 모인 분들은 정말 매사에 열심을 다하고, 공감 능력이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함께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망고님, 한님님, 한나님, 메리님, 선유님 또 매주 원데이로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요.
이한님(HANNIMetta)
2021-01-17
제게 꼭 필요한 수업을 만났어요.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생소한 산스크리트어가 매트 위에서보다 삶 속에서 발휘되는 경험을 했어요. 설거지를 하다가 갑작스레 기반이 되는 두 발의 느낌을 찾게 되기도 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중에 산토샤 라는 단어의 엄청난 울림을 느끼기도 하구요. 요가 수업을 들은 지 얼마 안 됐지만 이게 요가의 매력인 것 같아요! 게다가 매트 위에서 마주한 느낌의 여운을 글로 뿜어낼 수 있어서 제겐 더없이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많은 영감을 준 수업이예요. 즐거웠습니다!
베이글
2021-01-21
정말 인상 깊은 수업이었어요! 다른 곳에서 줄곧 선생님을 따라 하기만 바쁜 수업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혜진샘의 수업에서는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경험해 보지 못한 찌릿한 고통부터 부드럽게 회복되는 움직임까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잠깐의 안녕이라 생각하고, 아쉬움보단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시즌에 임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한님(HANNIMetta)
2021-01-17
글쓰기 주제 : '산토샤'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하루] 산토샤에 대해 떠오르는 마음들을 써내려 가면서 수차례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 단어에 담긴 완전한 에너지가 온몸을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인정과 합리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요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만큼, 산토샤라는 단어가 주는 평화의 울림이 크게 다가옵니다. 코로나로 수차례 휴업을 하면서 월급은 받지만, 일은 안 하는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떨결에 꿈에 그리던 생활을 하게 된 건데 이 시간이 기대한 만큼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첫 하루 이틀은 뒹굴 거리는 제게 면죄부를 줬습니다. 지은 죄는 있지만, 너그러이 아량을 베푼 것이죠.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나에게 매일, 매 순간 무언가 요구하게 되리라는 것을, 청소하든 책을 읽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을 무언가를요. 어떤 것이라도 찾아서 하지 않는 것은 이 사회에서 죄가 됨을, 존재 가치가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위안을 구하듯 일부러라도 명상을 했습니다. ‘적어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안전한 합리화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안에서 터져 나온 포탄의 자국들이 몸으로 드러나 병원에 다녀야 했음에도 끊임없는 자기 평가와 판단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랐습니다. 내일 할 일을 다이어리에 욱여 적고, 그 날이 되면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시간도 소중하다.’며 합리화를 했습니다. 여느 날처럼 마음에 대한 영상과 글을 접하는데 갑작스레 산토샤를 발견했습니다. ‘산토샤’라는 단어 자체는 아니었지만 이미 같은 깨달음을 접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머리로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 환희와 감동에 벅찼습니다. 할 일을 찾아 헤매던 저의 진짜 마음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제 안에는 존재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이것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었습니다. 호흡하는 생명으로 존엄성을 인정받고,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존재이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의무를 완수해나가야 했고, 이것이 제 안에 두려움과 욕망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과 욕망에 조종당하며 평가하고, 질책하고, 압박하는 것이 나의 허상이라는 것도요. 이제 와서 다른 누군가에게 ‘호흡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오직 나만이 나 자신에게 할 수 있고, 이것이 제 삶의 유일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어떻게 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히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하루를 보냅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가 어떤 찰나에 가슴으로 느껴지는 때가 찾아오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새삼, 나 자신에게 혹독한 만큼 다른 존재에도 혹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혹독한 마음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발견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얼마나 저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싶어하는지 이 문장을 적으며 다시 깨닫습니다. 결국, 이 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곧, 세상의 모든 존재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평온함을 얻는 책의 한 구절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저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주셔서. 저한테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안에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완전한 겁니다”
써니텐
2021-01-23
일요일마다 내 몸 곳곳의 찌릿짜릿한 고통을 느끼고 90분간 내 숨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딱 집어 뭐가 좋은건지는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숨을 내뱉고 여러가지의 자세를 견뎌내고 시도하는 모든 과정들이 좋았네요. 4번의 수련을 마치고 왜 요가가 좋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 오히려 새로운 나와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들 하지요. 낯선 곳에서 새로운 나를 알아가고 마주하는 것처럼, 요가를 하는 순간에는 나도 몰랐던 새로운 내 몸과 나를 알아가는 느낌이 여행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여행을 떠나 느낄 수 있는 현재와의 단절, 그리고 온전히 충만하고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해지는 느낌이 이번 수련에서 배운 모든 잡념을 잊고 다라나하기, 살아생전 처음 느껴보는 아릿한 감각에도 산토샤를 유지해보기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혼자 해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보면 글을 쓰는 것도 요가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또 듭니다. 내 안의 케케묵은 감정들을 글로 뱉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내 삶에 충만해지고 싶어서 글을 적고 또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횡설수설 이상한 글이 길어집니다... 아마 저는 '다라나'와 '산토샤'에 굉장한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 요가, 글들을 자꾸 다라나와 산토샤에 연결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요... 마지막 수련에서는 퇴고해보기를 배웠지만... 퇴고하는 순간 창피해서 댓글을 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핑계 아닌 핑계로 정리되지 않은 글이라기에 하기도 뭐한 댓글을 달아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