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의 야매로운 채식세계
가지의 야매로운 채식세계 | Ep.02 호주는 비건옵션, 한국은 제철나물
2021. 4. 13 | mango
 


가지의 야매로운
채식세계🍆

Ep.02 호주는 비건옵션, 한국은 제철나물

호주는 비건옵션, 한국은 제철나물

3년 전 나는 호주에서 채식을 결심했다. 호주의 채식 문화에 감명받아서는 아니고, 호주에서 한국어로 된 채식 책을 읽고 시작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호주에서 책을 더 열심히 읽었던 듯하다. 원래 집에 있을 땐 집에서 끓고 있는 된장찌개보다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가 더 당기고, 독립하고 나서야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집밥’ 아니던가? 비슷한 원리로 호주에서 열심히 한국 책을 읽으며 채식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호주에서 처음 채식을 시작하며 일단 먹을 수 있는 식재료와 음식들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메뉴와 식재료가 많았다. 슈퍼마켓에선 제품의 원재료를 꼼꼼히 보지 않아도 ‘Vegan(완전 채식)’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표기되어 있어 쇼핑하기가 쉬웠다. 식당을 가도 채식 메뉴가 따로 있거나, 채식의 단계만 말해주면 알아서 뺄 것은 빼고 추가할 것은 추가해줬으므로 주문이 깔끔했다. 비건 햄버거, 심지어 치즈, 생크림 케이크까지 있었으니 원한다면 얼마든지 정크(junk)해지고 패스트(fast)해질 수 있었다.

한국에 오니  쉽게 먹을 수 있는 거라곤 계란 뺀 비빔밥, 햄 뺀 야채김밥 정도가 있었다. 그나마도 빼는 걸 깜빡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 김과 밥을 까시고 본격적으로 길쭉한 단무지 및 야채들을 넣으실 때, 아주 다급히 “햄은 꼭 빼주세요!”를 외쳐야 한다. 예상했지만 한국에서의 외식은 쉽지 않았고, 완전한 채식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외식이 쉽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집밥 가지선생’이 되어갈 수밖에 없었고, 슈퍼마켓에서 비건 제품을 찾을 수 없어 집 앞 청과점이나 근처 시장에 자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시장에는 비건 옵션이 천지에 깔려있었다. 특히 채식인들의 빛과 소금이라고 할 수 있는 버섯과 두부의 종류는 호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채식 옵션이 많지만 고기 위주의 식문화가 있는 호주는 야채의 종류가 많지 않았다. 반면 한국에선 채식의 인식이 이제야 조금씩 퍼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나물 사랑은 찐이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마리화나 재배가 합법이 된다면 한국인들은 그 풀을 양념에 무쳐 먹고 데쳐 먹고 전으로 부쳐 먹을 거란 말을 들었다. 냉이와 쑥과 고사리와 버섯을 향해 산에 다닥다닥 붙어계신 어머님들을 보면 그냥 나온 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고군분투하게 될 나의 채식생활을 걱정한 호주 친구들이 생각난다. 코로나가 끝나면 그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망원 시장으로 가, 제철 야채들과 다양한 버섯들, 갓 나온 따끈한 두부를 사서 한국인의 밥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 비건 치즈는 없지만, 혹시 노루궁둥이 버섯을 먹어보겠느냐고. ‘토푸(tofu)’는 딱딱한 두부뿐만 아니라 연두부라고 하는 것도 있는데, 간장과 참기름만 살짝 올려서 먹으면 최고의 아침 식사가 된다고. 그렇게 한국 채식의 풍요로운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글 & 그림: 가지🍆
디자인: 메리☂
에디터: 망고🥭